느닷없이 너 마주친다 해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물건을 고르고
지갑 열고 계산을 치르고
잊은 게 없나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곳을 떠나듯

가끔
손댈 수 없이
욱신거리면 진통제를 먹고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잠들려고
잠들려고 그러다가

젖은 천장의 얼룩이 벽을 타고 번져와
무릎 삐걱거리고 기침 쿨럭이다가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할까
헛손질만 하다가 말듯이

대접만 한 모란이 소리 없이 피어나
순한 짐승의 눈처럼 꽃술 몇 번 껌뻑이다가
떨어져 누운 날
언젠가도 꼭 이날 같았다는
생각 한다 해도
그게 언제인지 무엇인지 모르겠고

길모퉁이 무너지며 너
맞닥뜨린다 해도
쏟아 뜨린 것 주워 담을 수 없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어
매일이 그렇듯이 그날도
껌뻑거리다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냥 자리를 떠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