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뻑이다가 - 최정례
느닷없이 너 마주친다 해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물건을 고르고 지갑 열고 계산을 치르고 잊은 게 없나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곳을 떠나듯 가끔 손댈 수 없이 욱신거리면 진통제를 먹고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잠들려고 잠들려고 그러다가 ...
느닷없이 너 마주친다 해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물건을 고르고 지갑 열고 계산을 치르고 잊은 게 없나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곳을 떠나듯 가끔 손댈 수 없이 욱신거리면 진통제를 먹고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잠들려고 잠들려고 그러다가 ...
장롱 밑에 떨어진 단추 어둠에 갇혀 먼지더미에 푹 파묻혀 있다 어느 가슴팍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까 한 사람을 만나 뿌리 깊게 매달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따스하게 앞섶을 여며주며 반짝거리던 날들 ...
빈 베치에 앉아있다. 누가 저것의 속을 비우고 입술 자국만 찍고 가버린 걸까 구겨 넣은 꽁초 하나 얼룩진 몸안에 버려져 있다 무너져버린 한 그림자를 품고 한동안 어두웠을 저것 쉽게 구겨지는 것들은 침묵만이 절절한 몸짓인 것을 돌아보면 한 사람의 여정에 스치는 지나간 들꽃이었던 것을 ...
마음의 어디를 동여맨 채 살아가는 이를 사랑한 것이 무섭다고 너는 말했다 두 팔을 아래로 내린 채 눈을 감고 오늘 죽은 이는 내일 더 죽어있고 모레엔 더욱 죽어 있을 거라고 너는 말했다 ...
좋은 언변으로도 달콤한 사탕발림으로도 당신을 넘하지는 않으려오 감싸고도는 안개의 정감으로도 따듯한 커피 한잔으로도 당신에게 걸리적거리지는 않으려오 다가서지 않으려오 섣불리 다가서지 않으려오 ...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는 짙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들판일수록 좋다. 아무것도 없는 벽지 한 장일수록 좋다. 누군가가 와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빛깔의 여백으로 가득 찬 마음. 그 마음의 한쪽 페이지에는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을 마시는 사람은 행복하다. ...
경계 - 박노해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순간의 감정 낭비를 하지 말 것 하지만 숨기지 말고 솔직해질 것 너무 우울한 생각 하지 말 것 안심하여 늘어지지도 말 것 ...
가난한 자의 허세 가난하고 궁핍한 가엾은 이여, 어찌주제넘게도 하늘의 한자리를 요구하는가. 초라한 오두막이나 통 속에 살고 거저 내리쬐는 햇볕 속이나 그늘진 샘터에 앉아 풀뿌리와 나물로 연명하여 게으르고 학자인 체하는 미덕을 기른다고 해서, 그래서 그러는 겐가. ...
만약에(If) -러디어드 키플링 만약 모두가 이성을 읽고 너를 탓할 때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만약 모두가 너를 의심할 때 네 자신을 믿고 그들의 의심마저 이해해줄 수 있다면 ...
진정 바라는 것 -맥스 어만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하십시오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들 역시 할 이야기가 있을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