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 황경신
온몸을 다해 사랑했으니, 이제 온 힘을 다해 이별하자 마음을 다해 슬퍼하고, 마음을 다해 후회하고, 마음을 다해 지나간 날들을 보내주자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들이라 해도 무엇 하나 자랑스럽게 내보일 흔적이 없다 해도 물처럼 흘러간 우리들의 시간들을 잡았다가 놓쳐버린 것들을 위해 마음껏 애도하자 그리하여 지금은 위로를 구할 때가 아니라 내가 슬픈 당신을 위로할 때 지금은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이별의 인사를 할 때 우리가 오른 곳이 정상이 아니라 먼 산의 가장 낮은 한 자락이라고 해도 가는 길에 쏟아지던 별들을 만났으니 족하지 않은가 가쁜 호흡 내뱉으며 힘든 발걸음을 옮길 때 당신이 곁에 있어 주었으니 족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할 때 ...